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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후쿠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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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리후쿠 마사히코는 일본의 전 프로 야구 선수로, 투수였다. 고등학교 시절 아이치 대회에서 준우승을 두 번 기록하며 '미카와의 닥터 K'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사회인 야구 시다스에서 활약한 후 2006년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입단하여 2016년까지, 이후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013년에는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으로도 참가했다. 2019년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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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후쿠 마사히코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모리후쿠 마사히코
원어 이름森福 允彦 (일본어)
로마자 표기Morifuku Masahiko
출생일1986년 7월 29일
출생지아이치현 도요하시시
신장172cm
체중70kg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모리후쿠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의 모리후쿠 마사히코
선수 경력
포지션투수
투타좌투좌타
프로 입단2006년 NPB 드래프트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 4라운드)
소속 구단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7년 ~ 201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2017년 ~ 2019년)
첫 출장2007년 3월 31일
마지막 출장2019년 6월 21일
NPB 통산 기록 (2019 시즌 종료 시점)
승-패17승 17패
평균 자책점2.59
탈삼진326
세이브18
홀드134
수상 경력
일본 시리즈 우승3회 (2011년, 2014년, 2015년)
NPB 올스타전 출장2회 (2011년, 2012년)
국가대표 경력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3년 (일본)

2. 프로 입단 전

도요하시 시립 사카에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나다 프렌즈에서 소프트볼(軟式野球)을 시작했다.[3]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요하시 선발 투수로서 전국 제패를 이끌었다. 중학교에서는 도요하시 스카이락스에서 경식 야구를 시작했다.[3]

도요카와 고등학교 진학 후 2학년과 3학년 때 모두 여름 아이치 대회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2학년 때는 56이닝 자책점 제로의 기록을 세웠는데,[4] 이는 구도 기미야스의 아이치 대회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58] '미카와의 닥터 K'(三河のドクターK|미카와노 도쿠타 케일본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58] 준결승에서는 야마우치 소마, 하세베 고헤이가 소속된 도자쿠 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지만, 결승에서는 도노우에 다케히로, 마루야마 다카시가 소속된 아이치 공업 대학 메이덴 고등학교에 0대 3으로 패했다.

2005년 고교 졸업 후 시닥스 야구부에 입사, 3월에 열린 도쿄 스포니치 대회에서 호투하여 신인상을 수상했고, 다케다 마사루와 함께 시닥스의 주력 투수로서 제76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제32회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 출전을 이끌었다.[3]

2006년 제77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도쿄 2차 예선에서 메이지 야스다 생명 경식 야구부를 상대로 제구력 난조와 컨디션 저하로 예선에서 패했지만, JR 동일본 경식 야구부의 보강 선수로 본선에 출전, 호리이 데쓰야 감독의 지도 하에 마무리 투수를 맡아 JR 동일본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3] 그 후 시닥스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일본 선수권 간토 지역 2차 예선에서 도시바 야구부를 상대로 선발 등판했지만 집중타를 맞아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닥스는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모리후쿠는 시닥스의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투수가 되었다.

시다스의 해체에 따른 특례로 고졸 2년차임에도 드래프트 대상 선수가 되었고,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으면 JR 동일본 입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3] 소프트뱅크의 등번호 '''19'''번은 당시 시닥스의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등번호였다.

2. 1. 유소년 시절

도요하시 시립 사카에 초등학교 1학년 때 하나다 프렌즈에서 소프트볼(軟式野球)을 시작했다.[3] 초등학교 6학년 때 도요하시 선발 투수로서 전국 제패를 이끌었다. 중학교에서는 도요하시 스카이락스에서 경식 야구를 시작했다.[3]

도요카와 고등학교 진학 후,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모두 여름 아이치 대회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56이닝 자책점 제로의 기록을 수립했는데[4], 이는 구도 기미야스의 아이치 대회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었다.[58] 三河のドクターK|미카와의 닥터 K일본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준결승에서는 야마우치 소마, 하세베 고헤이가 소속된 모리노 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지만, 결승에서는 도조 가쓰히로, 마루야마 다카시가 소속된 아이코 명전 고등학교에게 0대 3으로 패했다.

2. 2. 고등학교 시절

도요카와 고등학교 진학 후,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 모두 여름 아이치 대회에서 2년 연속 준우승을 차지했다.[4] 고등학교 2학년 때는 56이닝 자책점 제로의 기록을 수립했는데[4], 이는 구도 기미야스의 아이치 대회 기록을 경신한 것이었다.[58] 당시에는 '미카와의 닥터 K'(三河のドクターK|미카와노 도쿠타 케일본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58] 준결승에서는 야마우치 소마, 하세베 고헤이가 소속된 도자쿠 고등학교를 상대로 완봉승을 거두었지만, 결승에서는 도노우에 다케히로, 마루야마 다카시가 소속된 아이치 공업 대학 메이덴 고등학교에 0대 3으로 패했다.

2. 3. 사회인 야구 시절

2005년 고교 졸업 후 시닥스 야구부에 입사, 3월에 열린 도쿄 스포니치 대회에서 호투하여 신인상을 수상했고, 다케다 마사루와 함께 시닥스의 주력 투수로서 제76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와 제32회 사회인 야구 일본 선수권 대회 출전을 이끌었다.[3]

2006년 제77회 도시 대항 야구 대회 도쿄 2차 예선에서 메이지 야스다 생명 경식 야구부를 상대로 제구력 난조와 컨디션 저하로 예선에서 패했지만, JR 동일본 경식 야구부의 보강 선수로 본선에 출전했다. 호리이 데쓰야 감독의 지도 하에 마무리 투수를 맡아 JR 동일본의 4강 진출에 기여했다.[3] 그 후 시닥스 야구부가 해체되면서, 일본 선수권 간토 지역 2차 예선에서 도시바 야구부를 상대로 선발 등판했지만 집중타를 맞아 패전 투수가 되었다. 시닥스는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에, 모리후쿠는 시닥스의 마지막 경기에서 선발 등판한 투수가 되었다.

시다스의 해체에 따른 특례로 고졸 2년차임에도 드래프트 대상 선수가 되었고,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으면 JR 동일본 입단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6년 대학생·사회인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로부터 4순위 지명을 받고 입단했다.[3] 소프트뱅크의 등번호 '''19'''번은 당시 시닥스의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등번호였다.

3. 프로 선수 경력

모리후쿠 마사히코는 2007년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2007년 3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고, 9회에 등판하여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는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5] 2009년 4월 21일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는 6회에 구원 등판하여 3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며 프로 첫 홀드를 따냈다.[6]

2010년에는 좌완 중간 계투로서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5] 2011년에는 팀 최다인 60경기에 등판, 4승을 거두며 팀의 퍼시픽 리그 2연패에 크게 기여했다.[7] 5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는 프로 첫 세이브와 동시에 퍼시픽 리그 26번째 1구 세이브를 달성했다.

2012년부터 2016년까지는 팀의 핵심 불펜 투수로 활약했다. 2012년에는 브라이언 팔켄보그의 부상으로 마무리 투수를 맡아 17세이브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6년 시즌 후에는 국내 FA권을 행사하여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이적 후 2017년부터 2019년까지는 이전 만큼의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2019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였다.

3. 1.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시절

2012년에는 브라이언 팔켄보그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어 7월까지 14세이브를 올렸다. 8월부터는 구원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 다시 중간 계투를 중심으로 등판했지만, 65경기에 등판해 2승 5패 17세이브 24홀드, 평균 자책점 1.39를 기록했다.

2013년에는 오오사토 켄지의 허리 통증으로 5월 6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에서 프로 첫 선발로 등판했지만, 2이닝 1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2014년에는 5년 연속 WHIP 1 미만을 달성했다.

2015년에는 14홀드를 기록했지만, 0승 2패, 평균자책점 5.82로 부진하며 5년 연속 50경기 등판에는 실패했다.

2016년에는 2년 만에 50경기에 등판하여 2승 1패 16홀드, 평균자책점 2.00을 기록하며 부진에서 벗어났다. 시즌 중 국내 FA권을 취득했고, 시즌 후 권리 행사를 표명했다.

3. 1. 1. 2007년 - 2009년: 초기 경력

森福 允彦|모리후쿠 마사히코일본어는 2007년 3월 3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지바 마린 스타디움)에서 1군 데뷔전을 치렀다. 9회에 등판하여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는 인상적인 투구를 선보였다. 2008년과 2009년에도 1군 경기에 등판했지만, 우타자를 상대로 높은 피안타율을 기록하며 뚜렷한 활약을 보여주지는 못했다.[5]

2009년 4월 21일 도쿄 돔에서 열린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스와의 경기에서는 6회에 구원 등판하여 3타자 연속 삼진을 기록하며 프로 첫 홀드를 따냈다.[6]

3. 1. 2. 2010년: 중간 계투로의 성장

2010년 시즌에는 왼손 타자를 상대하거나 패전 처리 등판에서 신뢰를 쌓으며 성장했다. 8월 15일부터 30일까지 6경기에 등판하여 11과 2/3이닝 동안 WHIP 0.343을 기록했다.[59] 8월 26일 오릭스 버펄로스전(후쿠오카 돔)에서는 연장 11, 12회를 5타자 연속 헛스윙 삼진으로 막아냈다. 다음 날 지바 롯데전에서는 5회초 1사 만루 상황에서 등판, 무실점으로 막아 프로 데뷔 첫 승을 거뒀다. 갓토 게이스케와 함께 셋쓰 다다시, 브라이언 팔켄보그, 마하라 다카히로의 뒤를 잇는 중간 계투로 성장했다. 미세 고지, 시노하라 다카유키 등이 퇴단한 팀에서 좌완 중간 계투로서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5]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0월 16일 3차전에서 6회 1점 차 2사 1, 2루 상황에서 1이닝 무실점으로 포스트 시즌 첫 홀드를 기록했다. 10월 18일 5차전에서는 8회 4점 차 상황에서 등판, 9회 2사 2루에서 기요타 이쿠히로에게 투런 홈런을 맞고 팀은 패배했다. 총 4경기에 등판하여 4이닝 동안 평균자책점 4.50을 기록했다.

3. 1. 3. 2011년: 리그 우승과 일본 시리즈 우승

2011년 시즌, 모리후쿠 마사히코는 선발로 전향한 세쓰 다다시, 부진에 빠진 마하라 다카히로, 부상으로 이탈한 가토 게이스케와 후지오카 요시아키 등 구원 투수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셋업으로 활약하며 팀 최다인 60경기에 등판했다. 4승을 거두며 팀의 퍼시픽 리그 2연패에 크게 기여했다.[7] 5월 1일 지바 롯데 마린스와의 경기(QVC 마린 필드)에서는 9회 5점 차 2사 만루 상황에서 이시미네 쇼타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프로 첫 세이브와 동시에 퍼시픽 리그 26번째 1구 세이브를 달성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2차전(11월 4일) 8회 1점 차 상황에서 등판해 1이닝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고, 3차전(11월 5일)에서는 10회 1점 뒤진 2사 만루에서 호시 다카노리를 3루수 플라이로 잡아냈다. 이후 팀이 득점하며 동점이 된 11회에도 삼자범퇴로 막아내며 하세가와 유야의 끝내기 안타를 이끌어내 CS 진출에 기여했다.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3차전(11월 15일) 2점 차 2사 상황에서 1명을 막아 홀드를 기록했다. 4차전(11월 16일)에서는 6회 1점 차 무사 만루 위기에서 등판, 고이케 마사아키를 헛스윙 삼진, 히라타 료스케를 좌익수 플라이, 다니시게 모토노부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7회까지 6타자 연속 범타로 막아내며 홀드를 기록,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언론에서 '모리후쿠의 11구'로 불리며 큰 화제가 되었다.[8][9] 7차전(11월 20일)에서는 9회 3점 차 무사 1루에서 모리노 마사히코, 토니 블랑코를 막아내고 세쓰 다다시에게 마운드를 넘기며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공헌했다. 모리후쿠는 일본 시리즈 5경기에 등판하여 16타자를 상대로 무실점을 기록했다.

아시아 시리즈에서는 통일 세븐일레븐 라이온스와의 경기(11월 25일)에서 9회 4점 차 2사 1, 2루 상황에 등판했으나, 천융지에게 적시타를 허용하고 반우야오에게 3루타를 맞아 1점 차까지 쫓기며 강판되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11월 26일)에서는 8회 9점 차 상황에 등판하여 박석민, 최형우, 강봉규로 이어지는 클린업 트리오를 삼자범퇴로 막아냈다.

이 해 올스타전 중간 계투 부문 팬 투표 1위로 선정되어[10], 1차전(나고야 돔, 7월 22일) 7회 4점 차 상황에서 4번째 투수로 등판, 블라디미르 발렌틴, 사카모토 하야토에게 삼진을 솎아내는 등 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냈다.[11] 3차전(클리넥스 스타디움 미야기, 7월 24일)에서는 7회 5점 차 상황에서 등판하여 삼자범퇴로 처리했다.[12]

시즌 종료 후 12월 3일 계약 갱신에서는 다음 시즌 연봉으로 4,600만 엔이 증가한 7000만에 서명했다.

3. 1. 4. 2012년 - 2016년: 핵심 불펜 투수

2012년에는 마무리 투수를 맡았는데, 그 해에는 마하라가 어깨 수술로 전력에서 이탈하면서 시즌 초반에는 9회에 폴켄버그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폴켄버그는 팔꿈치 부상 경력으로 3연투를 피하는 팀 방침에 따라, 연투 다음 날 세이브 기회에는 모리후쿠가 9회에 마무리 투수로 등판했다. 5월에 폴켄버그가 어깨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모리후쿠가 혼자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고, 7월까지 14세이브를 올렸다.

8월에는 구원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어 오카지마 히데키나 야나세 아키히로가 마무리 투수로 등판하는 등 다시 중간 계투를 중심으로 등판했다. 그 해에는 최다 기록인 65경기에 등판해 2승 5패 17세이브 24홀드, 평균 자책점 1.39를 기록했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는 4경기에 등판, 퍼스트 스테이지에서 2경기에 등판하여 2이닝을 호투했고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도 2경기에 등판했지만 뚜렷한 활약은 없었다.

2012년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7월 20일 교세라 돔 오사카에서 열린 1차전에 5번째 투수로 등판하여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냈다.[13]

클라이맥스 시리즈 퍼스트 스테이지 1차전에서는 9회 2점 리드 무사 만루에서 등판, 크리스 카터의 유격수 땅볼로 1점을 내줬지만 후속 타자를 막아내며, 본인 첫 포스트 시즌 세이브를 올렸다. 3차전에서는 8회 2점 리드 상황에서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아 홀드를 기록하며, 퍼스트 스테이지 진출에 기여했다. 파이널 스테이지에서는 1차전에 7회 동점 1사 1루에서 니오카 토모히로에게 결승타가 되는 역전 적시타를 허용했고, 2차전에서도 7회 1점 뒤진 1사 2루에서 이토이 요시오에게 투런 홈런을 맞아, 팀도 CS에서 패했다.

오프 시즌인 11월 6일, "2012년 사무라이 재팬 매치"의 일본 대표팀에 선출되었다.[14][15] 2차전에 출전하여 6회 동점 상황에서 등판,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16] 12월 27일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5000만 엔 인상된 연봉 1.2억에 사인했다.[17] 12월 4일, 제3회 WBC 일본 대표 후보 선수 34명에 포함되었다.[18]

2013년 2월 20일, 제3회 WBC 일본 대표 선수 28명에 선출되었다.[19][20] WBC 1라운드 3월 6일 쿠바전에서 7회 3점 차 등판, 사구 1개를 허용했지만 1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 WBC 2라운드 3월 12일 네덜란드전에서는 7회 7점 차 등판, 무사 2, 3루에서 잰더 보가츠의 적시 내야 안타로 1실점, 랜돌프 오두버에게도 희생 플라이를 맞아 1이닝 2실점을 기록했다.[21][22] 3월 15일 왼쪽 어깨 통증을 느껴 평가전을 회피했다.[23]

정규 시즌 개막에는 왼쪽 어깨가 완치되어, 3월 30일 라쿠텐전에서 9회 2점 차 등판, 삼자범퇴로 막아냈다.[24] 오오사토 켄지의 허리 통증으로[25] 5월 6일 지바 롯데전에서 통산 200경기째를 맞아 7년 만에 프로 첫 선발을 경험했지만, 56구를 던져 2이닝 1실점으로 강판, 패전 투수가 되었다.[26][27] 6월 10일에 2군으로 강등되었으나, 7월 3일 1군 복귀, 7월 10일부터 8월 22일까지 16경기 연속 무실점, 8월 31일부터 10경기도 무실점으로 후반전은 회복했다. 홀드는 15개(팀 2위)로 줄었지만, 앞선 투수가 남긴 주자 36명을 내보내고(득점권 등판은 16경기), 생환시킨 것은 겨우 3명으로 중요한 순간에 상대의 기세를 꺾는 역할을 했다.

2014년에는 개막부터 한 번도 말소되지 않고 1군에서 활약하며, 5년 연속 WHIP 1 미만을 달성했다. 9월 11일부터 9월 28일까지 팀이 1승 9패로 부진했던 기간에는 5경기에 등판하여 모두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지만, 주자를 한 명도 생환시키지 않았다.

클라이맥스 시리즈 파이널 스테이지 1차전(10월 15일)에 9회 1점 차 1사 상황에서 등판, 5번 타자 오타니 쇼헤이로부터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3차전(10월 18일)에서는 6회 2점 차 2사 1, 2루에서 니시카와 하루키에게 볼넷을 내줬지만, 나카지마 타쿠야는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여 홀드를 기록했다. 4경기를 던져 2홀드,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했다. 한신과의 일본 시리즈는 1차전에서 후쿠도메 코스케에게 적시 2루타를 맞아, 그 1경기에 등판하는 데 그쳤다. 12월 26일 계약 갱신 협상에서는 4년 연속 50경기 이상 등판을 평가받아, 연봉 1.6억에 사인했다.[28]

2015년에는 1군 공식 경기에서 14홀드를 기록했지만, 0승 2패, 평균자책점 5.82, 우타자 피안타율 .455를 기록하는 등 부진했다. 등판 수도 32경기에 그쳐 5년 연속 50경기 등판을 놓쳤다. 8월 17일 출전 선수 등록에서 말소된 이후 1군에서 멀어진 한편, 웨스턴 리그 공식전과 3군 경기[29]에 조정 등판을 경험했다. 9월 20일에는 웨스턴 리그의 한신전(모리야마 시민 구장)에서 마지막으로 등판했다. 팀이 이 경기의 승리로 동 리그 사상 첫 4연패를 달성했기 때문에, 헹가래 투수가 되었다.[30] 모리후쿠 자신에게는 포스트 시즌 등판 기회가 없었다.[31]

2016년에는 1군 공식 경기에서 2년 만에 50경기에 등판했다. 주로 좌타자용 원 포인트 릴리프로 기용되어 통산 투구 이닝은 27이닝에 그쳤지만, 7월과 8월에 4연투, 9월에 5연투를 경험했다. 통산 2승 1패 16홀드, 평균자책점 2.00이라는 성적을 거두는 등 전년의 부진에서 벗어났다.[32] 정규 시즌 중인 8월 상순에 국내 FA권을 처음으로 취득했다.[32] 포스트 시즌 종료 후 11월 4일에는 "소프트뱅크가 아니면 지금의 나는 없다"라고 하면서도 "(좌타자용 원 포인트 릴리프라는) 자신의 입장에 만족하지 못하므로, 가장 빛날 수 있는 곳에서 야구를 하고 싶다"라는 이유로 권리 행사를 표명했다.[33]

3. 2.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2016년 12월 5일, 요미우리는 모리후쿠의 입단을 정식 발표했다. DeNA에서 FA권을 행사해 이적한 야마구치 슌과 함께 입단 기자 회견에 참석했고, 등번호 '''13'''번을 받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시절


이적 후 2017년부터 2019년까지의 상세한 기록은 하위 문단을 참조하면 된다.

3. 2. 1. 2017년 - 2019년

2016년 12월 5일에 요미우리는 모리후쿠의 입단을 정식으로 발표했다. 모리후쿠는 DeNA에서 FA권을 행사하여 이적한 야마구치 슌과 함께 입단 기자 회견에 참석했다. 등번호는 '''13'''번이다.

에는 1군에서 공식전을 시작했다. 셋업으로 기대되었지만, 개막부터 7경기에 등판하여 0승 2패, 방어율 5.40으로 좋지 않은 성적을 거두었다. 우타자를 상대로 한 피안타율이 .389였던 데 반해, 본래 강점인 좌타자를 상대로 한 피안타율은 .400으로 더욱 부진하여, 4월 24일에 출장 선수 등록이 말소되었다. 5월 16일에 다시 등록된 후, 5월 24일 한신전(고시엔) 6회말 2사부터 등판, 1⅓이닝을 무실점으로 막는 호투로 센트럴 리그 공식전 첫 승리를 거두었다[37]。그러나 6월 1일 라쿠텐전에서 1⅔이닝을 던지고 패전 투수가 되었고, 이후 좌타자를 상대로 한 원 포인트 기용으로 돌아갔다. 7월 중순부터는 등판 기회가 감소했다. 8월 11일, 같은 중간 계투 좌완인 야마구치 테츠야와 교체되는 형태로 1군 등록이 말소되었고, 이후 다시 승격하지 못했다. 2군에서는 안정된 투구를 계속했지만, 팜 일본 선수권에서는 좌타자인 사카쿠라 쇼고에게 결승점이 되는 역전 3점 홈런을 맞았다. 이적 첫해는 30경기에 등판하여 6홀드를 기록했다.

에는 2군에서 개막을 맞이했고, 6월 13일에 처음으로 1군에 승격했다. 팀에 부족한 중간 계투 좌완으로 기대되었지만, 승격 첫날 친정팀 소프트뱅크전에서 2점 뒤진 9회에 등판하여 타자 3명을 4구로 처리했고[38], 6월 26일 히로시마전에서는 사비에르 바티스타에게 홈런을 포함하여 4안타 3실점으로 강판되었다[39], 7월 2일에 2군으로 내려갔다[40], 시즌 오프까지 1군 승격은 없었고, 2경기에서 2이닝 동안 승패, 세이브, 홀드 없이 방어율 13.50으로 마감했다[41]

에는 2군에서 개막을 맞이했고, 4월 25일에 1군에 승격했다[42][43]。6월 21일 소프트뱅크전에서는 동점인 6회에 등판했지만 후쿠다 슈헤이에게 만루 홈런을 맞았다.

10월 2일 요미우리로부터 전력 외 통보를 받았고, 12월 24일에 현역 은퇴를 표명했다.

4. 국가대표 경력


대표

판선

발승

리패

전세

브타

자투

회피

타피

런사

구고



구데




진폭

투보
크실

점자

점방

2013일본20000102.020101200229.00

5. 은퇴 후

2020년 2월 9일, 미야자키시에서 열린 소프트뱅크의 캠프를 방문했다. 거처를 도쿄에서 과거에 살았던 후쿠오카로 옮겼다. 향후 진로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를 모색하고 있다. 야구 선수로서의 감각을 버리고 공부해야 한다. 모처럼이니 서둘러 결정하지 않고 천천히 여러 가지를 보면서 찾아가고 싶다"라며 아직 "미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해설자 제안은 받고 있어 "고맙게도 해설 이야기를 받아서, 야구를 공부하면서 해나가겠다. 어릴 적부터 야구를 보는 것도 하는 것도 좋아했다. 야구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즐겁다"라고 말했다.[44]

같은 해부터 규슈 아사히 방송, 스포츠 라이브 +, BS 아사히의 야구 해설자로 취임했다.

6. 투구 스타일

고교 시절에는 슬라이더의 예리함과 커브의 변화로 삼진을 잡아내는 스타일이었으며, 프로 입단 전에는 스트레이트 최고 구속이 143km, 원거리 송구는 100m였다. 프로 입단 초기에는 스리쿼터였으며, 오버스로와 사이드스로의 이도류였다가, 2008년 가을 캠프부터 폼을 개조하여 사이드스로 하나로 정착했다.[45][9] 2008년 10월 시점에서는 느린 슬라이더, 슬러브를 던졌다.[46]

2010년에 투구 개시까지의 정지 시간이 긴 폼, 그리고 사인을 주고받은 후 투구 모션에 들어갈 때 왼손을 높이 드는 독특한 동작을 특징으로 하는 사이드스로로 전향했다. 평균 구속 약 134km/h[47], 최고 140km 초반의 속구와 옆으로 미끄러지는 슬라이더·슈트를 던지며 범타를 유도하는 투구 스타일이 되면서 재능이 만개했다.

모리후쿠의 투구 폼


릴리프 등판 시에는 파울 라인 앞에서 모자를 벗고 그라운드를 향해 인사를 한 후 마운드에 오른다.

7. 개인적인 면모

"오챠메!"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장난기 넘치는 성격이었다. 처음에는 "오챠메"가 애칭이었으나(2020년 11월 8일 KBC 라디오 STEP에서 본인 언급), 이후 "초메"로 변하면서 이쪽이 닉네임으로 정착되었다[48]

호크스에서 등번호 '''19'''번을 달았는데, 이는 시닥스 감독이었던 노무라 가쓰야가 현역 시절에 착용했던 번호이다. 노무라는 당시 모리후쿠의 첫인상에 대해 몸집이 크지 않고 구속도 빠르지 않아 "힘들다"라고 생각했으며, 프로에서 연락이 왔을 때 매우 놀랐다고 한다. 그래서 "바깥쪽 높은 쪽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을 수 있는 컨트롤을 갈고 닦아라", 구종은 직구와 슬라이더밖에 없었기 때문에 "슈트를 익혀라"라고 가르쳤다고 한다[49]

한편, 노무라는 "호크스의 19번"에 대해 '''포수'''가 착용하기를 기대해 온 경위가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야마우치 다카노리와 가이 타쿠야 항목 참조) 라쿠텐 감독 시절, 소프트뱅크와 대전한 2009년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경기 전에 인사를 하러 온 모리후쿠에게 "등번호 19번이 뭐냐. 등번호를 바꿔라. 뻔뻔하다. 19번을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뭐, 19번은 내가 난카이에서 운을 다 써버렸으니까. 지금은 아무것도 남은 게 없겠지"라고 푸념했다[50]

프로 입단 전에 목표로 했던 투수는 신장 160cm대 후반으로 당시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이어가던 이시카와 마사노리와 시닥스의 선배이자, 팀을 일본 제일로 이끌기 위해 "팀을 위해 몸을 깎았다"는 다케다 마사루 두 사람이다[51]

팬 서비스도 중요하게 생각하며, 2012년 2월 밸런타인데이에 팀 최고인 200개의 초콜릿을 받는 등 인기가 많다[52]

2012년에는 올스타 게임 출전 시에 장래적인 메이저 진출을 희망하는 의향도 있다는 것을 밝혔다[53]

프로레슬러 요시노 마사토와 친분이 있다[54][55]

독신이며, 결혼 경력은 없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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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뉴스 日刊スポーツ 2011-11-17
[5] 뉴스 森福がきらりと光る好救援 プロ4年目で初勝利 https://www.sponichi[...] スポーツニッポン 2010-08-27
[6] 뉴스 プロ野球メジャー流で見るセイバーメトリクス 日刊スポーツ 2010-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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